본문 바로가기

[Signature] 스토리 모음

나르시스트의 가스라이팅 사랑 (부제 : 그 불빛은 내 눈에만 흐렸던 것이 아니다)

728x90

단어 하나가 구원이 될 때가 있다. 

내게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네 글자가 그랬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스스로를 꽤 단단한 사람이라 믿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였던 그와의 연애는 

정교하게 설계된 미로 같았다. 

미로의 끝에서 

나는 철저하게 부서져 있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지적들로 시작되었다. 

옷차림, 말투, 행동 하나하나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된 간섭들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정상적인 사고조차 불가능해졌다.

 

 

가장 지독한 것은 

상황을 인지하는 나의 감각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분명 잘못은 그가 저질렀다. 

바람을 피우거나, 선을 넘는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준 것은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싸움이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잘못한 사람은 늘 내가 되어 있었다. 

 

 

 

"네가 예민해서 그래", "네가 원인을 제공했잖아." 

남들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하고 멀쩡한 척하는 

그의 가면 앞에서, 

내 기억과 판단은 

매번 힘을 잃었다. 

 

 

내가 멍청해서가 아니었다. 

진짜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명백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내가 못나서,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스스로를 탓하는 

기괴한 심리적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때 내 손을 잡아준 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였다. 

 

 

 

내가 겪은 이 형체 없는 고통,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숨을 조여오던 

그 괴롭힘이 실존하는 피해라는 것을 

그 단어가 명확히 구분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내가 당한 게 가스라이팅이었구나." 

그제야 나는 비로소 내 아픔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요즘 미디어나 인터넷을 보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질 때가 많다. 

 

 

 

"당신이 아는 가스라이팅은 진짜가 아니다"라며 

피해의 진짜 여부를 가려내려는 시선들, 

혹은 그저 단순한 말다툼이나 기분 나쁜 지적질에까지 

이 단어를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모습들을 보며 가슴이 아려온다.

 

 

 

피해자들은 매 순간 엄청난 고통과 고민을 거쳐 

간신히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세상에 꺼내놓는다.

 

 

 

그런 그들에게 "그건 진짜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네가 부풀려 말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 태도는,

겨우 지옥에서 걸어 나온 사람을

다시 그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일과 같다.

 

 

 

만약 그 고통의 무게를 단 한 번이라도

실제로 겪어본 사람이라면,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하기보다

'진짜와 가짜'를 분석하는

냉소적인 태도를 쉽게 취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대단한 음모나 거창한 폭력으로만 찾아오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의 손에 의해 

서서히 영혼이 잠식되는 유령 같은 범죄다.

 

 


지금도 누군가는 "내가 예민한 걸까?"라며 

매일 밤 자신을 책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느끼는 그 위태로움과 슬픔은 진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피해의 크기를 자로 재듯 엄격하게 재단하는 냉정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서히 꺼져가던 한 사람의 불빛을 향해 

 

 

"너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공감이다.

 

 

 

-2026. 6. 나해솔

 

 

 

728x90